전시 포스터
배종헌
고립만리 孤立萬里 콘크리트 균열과 거푸집흔, 목판에 유채, 15x10㎝, 2022
배종헌
사슴에게 길을 물어 向鹿問路_R90_ #AB554GH Castle Villa 건물 외벽의 어떤 돌, 목판에 유채, 50x22㎝, 2021
배종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어느 아침 목판에 유채, 18.7x42.3㎝, 2022
배종헌
사슴에게 길을 물어 向鹿問路_ 돌 하나에 네 개의 풍경_ #AB554GH Castle Villa 건물 외벽의 어떤 돌, 종이에 복합 재료, 21x29.7㎝, 2021
“나의 정원은 누군가의 수고에 의해 잘 가꿔진 정원은 아니지만 아름답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원’이기에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토록 분방하며 무쌍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르게 매일매일 새로운 정원이 탄생하고 사라져 가는 우리 동네 콘크리트 도시초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 작가 노트에서
<고립여행>은 2021년 참여했던 글렌피딕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구성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해외 레지던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출국 전 72시간 이내의 PCR 영문 음성확인서, 자가격리와 같은 새로운 제약을 만들었다. 배종헌은 스코틀랜드의 한 스튜디오에 고립된 3개월 동안 자신의 사적 체험을 예술 실천으로 기록했다. 예술 창작을 향한 인간의 의지, 그리고 삶의 참다운 가치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진지하게 되묻는 자신을 발견했다.
스코틀랜드 더프타운에 위치한 레지던시는 위스키 증류소인 글렌피딕이 운영한다. 게일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글렌Glen과 사슴을 뜻하는 피딕fiddich을 조합해 ‘사슴 골짜기Glenfiddich’라는 브랜드를 1886년 만들었다. 배종헌은 ‘사슴골짜기’의 바위 틈에서 발견한 산수의 형태를 캔버스에 담았다. 대구로 돌아와 ‘아래만 보며 걷는 어느 콘크리트 유랑자를 위한 드로잉 툴 박스(2020-)’를 활용한 작은 목판페인팅을 지속하는데, 골목을 걸으며 발견한 동식물의 흔적과 산수 풍경을 유화로 그렸다. <고립만리> 설치작업은 작가가 매일 걸었던 대구 한 동네 골목길의 비뚤비뚤한 형태를 가져온 것이다. 이와 함께 <콘크리트 가든> 연작을 배치한다.
모든 그림은 나름의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예술가는 화면을 구성하는 자신만의 규칙을 부여해, 특정한 영역을 뒤덮어 그림을 만들기 때문이다. 배종헌의 <콘크리트 가든> 연작은 자연을 대상으로 보는 풍경화가 아닌, 자연을 빌어 예술가의 정서와 세계관을 담는 산수화의 전통을 잇는다. 예를 들어 <콘크리트 정원아무것도 하지 않은>은 가로로 긴 두루마리 족자 그림의 형식을 가져왔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흩날리고 모래가 일렁이는 듯하다. <고립만리孤立萬里 콘크리트 균열과 거푸집흔>는 15x10cm 크기의 작은 목판에 유채를 그린 풍경화다. 울트라마린 블루와 구리색의 조합은 긴장감을 만들며, 콘크리트 균열과 거푸집흔이 남긴 흔적에서 배종헌 만의 정원을 그린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객 또한, 자신의 감정과 기억, 관심사에서 출발해 저마다 다른 정원을 볼 것이다.
배종헌의 접근 방식은 조르주 모란디의 삶을 떠오르게 한다. 모란디는 일생을 볼로냐의 작은 방에서 정물화를 그렸다. 그에게 3평도 안되는 물리적 공간은 저 너머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또다른 공간이 된다. ‘회복 불가능한 행성에서의 현실적 삶의 예술을 꿈꾸는 한 게으른 정원사의 기록’이라 배종헌은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생태적이라는 작가의 믿음을 드러낸다.
글: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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