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유선태
말과 글 acrylic on canvas_130x162cm
권오훈
Monument 48X16X10cm_Porcelain sculpture_2014
유선태
말과 글 acrylic on canvas_130x162cm
권오훈
Monument 24X16cmX10cm_Porcelain sculpture_2016
강민수
달항아리 201306-2 58x55x18.5cm
강민수
달항아리 202211-2 54x51.5x20cm
- 유선태 '말과 글'
유선태는 일상의 친숙한 사물들로 초현실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그의 그림에는 사물들을 낯선 관계 속에 놓는 '데페이스망(dépaysement)' 즉, 일상의 오브제들을 그 쓰임과 다르게 그려내거나 배치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낯설게 느껴지도록 하는 기법이 활용되었다. 사과의 중심에 풍경이 담긴 창문이 그려져 있거나 타자기와 축음기, 책들이 공중에 부유하듯 화면 곳곳에 표현되었다. 이는 그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이원적 개념들을 작업에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의 전 작업에 제목으로 붙는 '말과 글 (The Words)' 또한 청각과 시각이라는 양가성을 지닌다. 유선태는 이러한 이원론적 개념이 그림에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되어 하나로 통일되도록 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이미지는 그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자전거 타는 사람이다. 이 이미지는 2차원의 평면과 3차원의 공간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작가의 자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는 스스로의 자화상이면서 화면을 융합하는 중재자이다. 각각의 사물을 정의하는 단어는 하나로 부족하다고 말하는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몽환적인 가상세계를 그림을 통해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 권오훈 'Monument'
도예가 권오훈은 어느 인터뷰에서 교수 또는 작가로 호칭되기 보다는 세라믹 디자이너로 호칭되는 것을 더 좋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 속에는 그의 작업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과 함께 그의 작업의 특징이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손으로 흙을 빚어 작품을 만드는 도예와 달리 그의 작업은 얇은 석고판 조각을 여러 개 조립해 원하는 형태의 몰드를 만든 후 캐스팅 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든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요구되는 것은 자유로운 손놀림이 아니라 원하는 기하학적 형태를 구성하고 얻어내기 위한 수학적 계산의 치밀함과 건축학적 공간 구성에 대한 기하학적 이해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역설적으로 자유로움을 스스로 구속하고 속박함으로써 그런 제한성 속에서 얻게 되는 가능성의 한계에 몰입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근대 건축의 최고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건축을 하나의 조형물로 인식했는데, 건축가가 상기해야 할 세 가지 교훈으로 볼륨, 표면, 평면 세 가지를 꼽았다. 이들 요소는 건축을 질서의 정신, 의도의 통일성, 관계에 대한 감각의 산물로 인식하고자 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이해하는 중요한 모티프이다.
미니멀한 볼륨, 형태를 부여하고 규정하는 선들에 의해 분할됨으로써 확장된 볼륨의 기하학적 표면과 곡면들, 이들을 자극하는 평면의 힘이 내재된 권오훈의 작품들은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을 통해 추구했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의 작품이 지닌 이러한 특징들은 흙이라는 재료의 맛이나 불에 의한 요변의 효과를 스스로 거부하고 치밀한 수학적 계산에 의한 기하학적 작품 구성을 통해 얻게 된 철학적 사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에 있어서 사변적인 열망은 수학적 명징성에 의해 억제 되고 정화되면서, 기하학적 구성의 제한성 속에서 희미한 사유의 불빛을 쫓아 작가적 고통을 감내했을 것이다.
쉽게 깨어지기 쉬운 물성을 가지고 자신의 철학적 함의를 담아내는 작업을 꿈꾸는 그의 태도는 역설적이지만 본질적이다. 미의 형태성은 한없이 약하고 깨어지기 쉽지만 내재된 함의는 불변적이며 여전히 작가적 창조성을 자극하고 유혹하기 때문이다. 사이렌(Siren)의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강민수 '달항아리'
새벽 물안개처럼 부드러운 백색 유약을 입고 둥근 달항아리들이 수런거리듯 서로 둘러 앉아 있다.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은 그 하나하나의 표정과 어울림에서 그들 모두가 한 식구임을 알겠다. 그들 사이로 그가 함께 어울리자 아직 귀가하지 않았던 가장이 돌아와 둘러앉은 저녁 밥상머리처럼 푸근하고 정겹다. 강민수가 바로 그 가장이다.
강민수는 십 수년째 오로지 백자 달항아리에만 매달려 작업해 오고 있다. 직접 발로 전국을 누비며 흙을 찾고, 자신의 유약을 만들고, 손수 장작불을 지핀 가마에서 달항아리를 구워낸다. 그가 구워내는 달항아리는 높이가 육십 센티미터를 넘는 것이 허다하다. 그의 달항아리 작업은 그 만큼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기술적으로도 난이도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별 수 없다는 듯 내색 않고 묵묵히 그 일을 하고 있다. 강민수는 별 수 없는 사기장이다.
백자 달항아리의 어떤 매력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달항아리 만드는 일에 오롯이 매진하게 한 것일까? 흙을 빚고 굽는 일이 좋아서라면 그렇게 힘든 달항아리 작업 말고도 많을 텐데, 왜 달항아리 일까?
원래 백자 달항아리는 조선시대 후기 즉,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실용적인 대형 기물이었다. 그러나 관상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자 달항아리는 조선 도자 중 가장 빼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룬 것으로 후대에 평가 된다. 그것은 아마도 조선시대를 관통했던 성리학적 담론의 한 예를 사기장이 무심한 듯 빚어낸 달항아리에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백자 달항아리에서 구현된 선의 간결함과 형태의 넉넉함, 그리고 백색의 순수함은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추구하던 조선 정신이 한데 어우러진 진경을 보여준다.
달항아리에서 드러나는 선은 느리지만 처지지 않아 탄력있고, 그 선이 이루는 형태는 탓하지 않는 넉넉함을 지녔다. 주변을 감싸듯 번지는 백색의 순수함과 부드러움은 정신의 궁극적 표징이며, 삶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정점이다. 그렇게 큰 기물이 지닌 어쩌면 휑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에 청화나 철화로 뭔가를 채워 넣으려는 조급한 마음을 다독인 절제미가 이름 없는 꽃으로 만개해 있다.
그런 거 같다. 강민수는 그 꽃향기를 맡은 거 같다. 그 향기에 빠진 거 같다. 그 향기를 따라 꽃을 쫓고 있다. 그러나 아는 이 없는 이름 없는 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찾을 것이다. 그의 달항아리들이 그를 닮았고, 그가 자신의 달항아리를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담기에는 궁군 달항아리가 제격이다.
1957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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