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김민애
《거인》 전시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2023.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ONE AND J. Gallery. 촬영: 아티팩츠
김민애
《거인》 전시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2023.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ONE AND J. Gallery. 촬영: 아티팩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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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전시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2023.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ONE AND J. Gallery. 촬영: 아티팩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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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전시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2023.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ONE AND J. Gallery. 촬영: 아티팩츠
김민애
《거인》 전시 전경, 원앤제이 갤러리 2023.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ONE AND J. Gallery. 촬영: 아티팩츠
‘거인’은 이름 없이 공허한 덩어리일 뿐이에요. 그것이 가족이든, 종교든, 정치적 이데올로기든, 불완전한 인간들은 기댈 목발이 필요하고 그런 요구와 욕망들이 투영된 집합체로서 비대해진 거인은 겉은 화려하거나 웅장할지 몰라도, 한없이 우둔하고 쓸쓸한 것 같아요. _작가의 말
우리가 바라왔던, 바라보고 싶은, 바라봐야 할 ‘거인’은 대체 무엇일까. 김민애는 오래 묵혀왔던 고민으로 뭉쳐진 덩어리를 전시 《거인》을 통해 바깥세상에 끄집어 내보인다. 전시에는 미술 혹은 조각을 다루는 작가로서의 고민뿐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뒤엉켜 있다. ‘잘’ 살기를 바라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발현되는데, 이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신념, 사회적인 합의 혹은 이념 등 무언가를 부여잡고 행복, 명예로움 등 온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치의 근삿값에 다가가 보려고 애쓴다. 우리가 의지하고 믿는 무언가는 신기루처럼 잠시 일렁이며 잡힐 듯하다가도, 이따금 유령처럼 자취를 확 감추기도 한다. 뜬구름보다도 와닿지 않는 이 껍데기와 같은 허상에 기대어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작가는 그간의 생각들을 《거인》을 통해 그려내고자 한다. 투명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눈앞에 당장 비치는 형상을 확신 없는 손놀림으로 따라가는 것처럼, 김민애는 미술과 세상에 대해 보이는 대로 질문하고 헤집으며 전시라는 일시적인 상황을 조직한다.
김민애는 자신에게 주어진 전시공간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받아들이고, 그 물리적 조건에서 작동할 수 있는 맥락과 적극적으로 호흡한다. 이번 전시가 펼쳐지는 원앤제이 갤러리는 크게 3개의 층이 각기 다른 공간적 개성을 지니는데, 특히 작가는 각 층계를 구분하는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이를 삶의 알레고리로 인식한다. 작가가 그동안 주로 전시공간의 건축적 요소에 직접적으로 반응한 작업을 선보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작업 방식과 더불어, ‘믿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욕망’과 ‘조각에 대한 질문’이 각 층에서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고, 그것이 반영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보려는 또 다른 욕망이 깃든다. 영광스러운 금빛 깃발이 되기를 바라며 검은 깃발에 하염없이 금색 칠을 하는 사람처럼, 작가는 《거인》에서 허상일 수도 있는 기치를 흔든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지면 아래로는 깊숙하고 어두컴컴한 층위가 펼쳐진다. 온통 검게 그림자 진 공간 속, 죽음을 상징하는 듯한 형태의 좌대와 20점의 먹지 드로잉이 있다. 〈먹지 드로잉〉(2023)에서 김민애는 미술의 역사 안으로 편입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상들, 미켈란젤로나 로댕의 조각 등이 촬영된 이미지의 외곽선을 그대로 따라 그리며 본연의 형상을 복제하듯 되짚는다. 각각의 조각은 당시의 사회적 신념들이 반영된 부산물들일 것이며, 시대를 막론하고 대체로 주름진 옷을 입고 우뚝 서있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대량생산되는 종교 성상 복제품들에서도 빈번히 발견된다. 지하층에서 ‘거인’을 만들기 위한 작가의 리서치 과정을 엿볼 수 있다면, 위층에서는 그 사유를 본격적으로 시각화한다. 미술도 종교처럼 어떠한 신념이 작동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온 것임을 암시하듯, 작가는 기존에 존재하는 조각들의 형태가 합쳐진 듯한 정체가 불분명한 하나의 형상을 만들고, 이를 복제한 대형 조각상 3점을 2, 3층에 연속 배치해 선보인다. 〈연속된 조각상/연속된 좌대〉(2023)에서 조각은 관람객의 눈높이와 공간의 층고에 따라 착시를 유도하거나, 심지어 일부가 댕강 잘려버린다. 또한,〈먹지 드로잉〉에서의 복제 행위처럼, 〈연속된 조각상/연속된 좌대〉에서도 결국 조각-작품이 유일하고 온전한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화려하고 유려한 레이스를 장착한 멋스러운 좌대 위에 우상처럼 서있을지라도, 이는 복제가 가능하고 나아가 공간에 의해 머리가 잘릴 수밖에 없는 힘없고 불완전한 덩어리이다. 단단한 몸체의 육중한 조각처럼 보여도, 사실은 플라스틱으로 본 떠져 속이 텅 빈 껍데기와 같은 것이다.
애석하게도, 작가의 고민에 대한 명쾌한 답은 이번 전시를 통해 귀결되지도 않을뿐더러, ‘거인’처럼 실체가 없는 허상일 수 있다. 그 답을 알려는 마음조차 헛된 욕망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가 우리 앞에 선보이는 이 전시는 어찌 됐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불완전한 모습을 건드린다. 내 의지로 시작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삶이라는 여정 속, 우리는 각자의 욕망, 좌절, 유희, 슬픔 등에 수시로 흔들리고, 심지어 깃발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부낀다. 죽음이라는 인간 본연의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태초부터 첨단과학의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영생, 장수, 웰빙을 꿈꾸며 또 다른 거인에 한없이 기대오고 있다. 김민애는 《거인》을 통해 이러한 삶의 알레고리를 담아내고, 늘 어딘 가에 의지하고 기댈 존재를 만들어내 소망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등 매 순간을 생존하고 있는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고백한다. 과연 우리가 기대어 살아가는 ‘거인’은 무엇일까? 《거인》은 우리로 하여금 질문과 생각을 꼬리 물게 하고, 심연에서 희뿌옇게 부유하는 듯 참으로 미심쩍게 한다. 자신이 그간 믿어오거나 의지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면 허무함이 밀려오지만, 동시에 거인의 존재가 더 이상 진리의 목소리는 아닌 만큼 그저 나를 어떤 방식으로든 돌보며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과 함께 단순한 위안과 설렘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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