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경: 소녀와 레후아-landscape in Jeju and Hawaii
2023.05.01 ▶ 2023.07.31
2023.05.01 ▶ 2023.07.31
Ⅰ. 오히아 레후아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뜨겁게 집어 삼켰다. 타는 듯이 붉은 대지 위, 소녀 A가 서 있다. 연약한 생명이 혼자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섬을 송두리째 부수었지만 동시에 생명을 키워내었다. 잿더미 속에서 오히아 레후아가 싹을 피우듯이, 소녀는 성장하며 마주칠 난관을 이겨낼 것이다. 초록 풀과 붉은 꽃은 소녀의 안식처, 까마귀는 그녀의 벗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세대보다 빈곤과 결핍을 느끼고 있다. 우을증을 겪던 14살 아이는 몸을 던져 자살하며, 청년들은 성별, 경제적 능력에 따라 무리지어 서로를 비난하고, 노인들은 찾아오지 않는 자녀들을 기다리며 외롭게 늙어간다. 작가 김상경은 각자의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는 말을 전하고자 한다. 역경 속에서도 자라나는 소녀와 오히아 레후아가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Ⅱ. 까마귀의 수다
두 브래드트리 위에서 까마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푸른 깃털을 가진 까마귀 B씨는 초록빛 현실과 샛노란 이상의 경계에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 "내 주제에 무슨 꿈이야. 그냥 되는 대로 살자." "아니야. 한 번만 더 도전해보자."
까마귀의 고민도 사람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작가는 지난 날을 반성하고 미래를 위해 도전하는 현대인을 응원한다.
Ⅲ. 죽음의 문턱 앞에서 돌아오다
13년을 함께 한 반려견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 쏟아낸 피는 몸을 회복하게 하였다. 이제는 삶을 만끽하며 세상을 누비고 있다.
작가는 2022 「환희」의 붉은 열대수 열매는 죽음이 삶으로 전환되는 장면을 포착했다. 「해질 녘의 오히아 레후아」는 긴박한 변화의 순간을 담은 하늘 아래, 죽음을 앞둔 반려견이 죽음을 극복한 스스로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냈다. 2023 「낮잠」은 병을 이겨낸 후 행복한 단잠을 자는 반려견을 통해 휴식의 시간을 표현했다.
수 차례 찾은 거문 오름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이 한 공간에 멈춰있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천남성 열매, 고사리, 갈대, 억새 등 식물의 유선형 선들과 다채로운 색감, 강한 바람에 흔들리는 움직임, 시야에 가득 찬 하늘과 구름의 흐름 등은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제주에 살아온 대표생명체로서 말들의 과거의 시간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미래의 시간을 4계절로 나누고 세찬 바람에 쫓겨가는 구름이 가득한 하늘 등 제주만의 특징이 가득한 장면으로 구성하여 한 순간에 포착하고 싶었다.
2020~23년 까마귀는 제주 거문오름과 하와이 브레드트리, 오히아레후아를 배경으로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2020 천남성과 까마귀는 제주의 삼나무 숲을 지키는 위엄있는 수호자로, 2021 천남성과 까마귀는 세상일에 관심많고 시끄러운 동네 사람들처럼, 2022년 천남성과 까마귀는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으려고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젊은이들처럼 그려보았다. 브레드트리와 함께 있는 까마귀들은 색채와 자세를 통해 수줍음, 희망, 열정 등 개개의 개성을 담았다. 까마귀의 수다(2023)는 초록과 노란 잎의 두 그루의 브레드트리를 배경으로 푸른 톤과 붉은 톤의 여러 마리 까마귀로 구성되어있다. 한 까마귀가 현실의 초록잎 나무와 이상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노랑잎 나무 사이에서 차분하게 생각하는 포즈로 시작하여 앞을 내다보고 탐색하며 용기있게 날아가고 지난 일을 반성하기도 하는 다양한 모습을 현실세계에 빗대어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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