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상설전 《권진규의 영원한 집》 Kwon Jin Kyu Forever Home
상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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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포스터
권진규
기사騎士 1953, 안산암, 65×64×31cm,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마두 B 1953, 안산암, 30×70×18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가타멜라타(도나텔로) 모사 1956-57, 종이에 잉크, 28.3×22.5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도모 1951, 테라코타에 채색, 25×17×23cm,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도모 1950년대, 테라코타, 30×21×27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도모, 1960년대 초, 테라코타, 25×15×26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나부 1955, 배나무. 39.8×9.4×8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남성입상 1953년경(사후제작), 청동, 49.5×12×11cm,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나부 1953-54, 석고에 채색, 70×22.5×15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여성입상 1954, 석고에 채색, 58.4×14×14.6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나부 1954, 석고, 33.5×11.3×17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자소상 1960년대, 테라코타, 17.3×16×11.5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자소상 1968, 테라코타, 20×14×19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남자두상 연도 미상, 알루미늄, 29×20×18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춤추는 뱃사람 1965, 테라코타, 58×79×7cm, 테라코타에 채색,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서 있는 여성 1968, 테라코타, 40×27×19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앉아있는 여성 1972, 테라코타, 26×15×17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앉아있는 여성 1972, 테라코타, 26×15×17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고양이 머리 18.고양이 머리, 1960년대, 건칠, 9×13×11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흰 소 1972, 테라코타에 채색, 31.1×46.5×42.1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선자 20.선자, 1967, 석고, 29×14×15.9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예선 1968년 10월, 테라코타, 46×31.7×25.2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경자 1971년경, 건칠, 46.4×36.4×27.7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입산 1964-65년경, 나무, 109×93×23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자소상 1970년대, 석고, 31×16×20cm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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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1970년대, 나무, 25×8.5×6.5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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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1960년대, 화강석 13×8×9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박명래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권진규 무사시노미술학교武_野美術_校유학시절 사진 MC2014.01/Ⅰd003/0009.0001,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권진규
권진규 무사시노미술학교武_野美術_校유학시절 사진 MC2014.01/Ⅰd003/0008, MC2014.01/Ⅰd003/0009,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소장, 과천, 대한민국
권진규
권진규 무사시노미술학교유학시절 사진 MC2014.01/Ⅰd003/0008, MC2014.01/Ⅰd003/0009,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소장, 과천, 대한민국
권진규
권진규 부인 오기노도모荻野ト乇사진 MC2014.01/Ⅰd001/0015,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권진규
권진규 자소상 사진 사진,MC2014.01/Ⅰa006/0048,(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권진규
권진규 프로필 사진 MC2014.01/Ⅰb005/0004.0001,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권진규
아틀리에서의 권진규 MC2014.01/Ⅰb005/0009, (사) 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권진규
『황순원전집』 제2권 제2권, MC2014.01/Ⅲa/0034,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센터 소장, 과천, 대한민국
권진규
드로잉 북 1 1957, 종이에 혼합매체, 30.2×26.3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드로잉 북 3 1964, 종이에 혼합매체, 21.5X32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드로잉 북 3> 1964, 종이에 혼합매체, 21.5X32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드로잉 북 9 1960년대, 종이에 혼합매체,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드로잉 북 9 1960년대, 종이에 혼합매체,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드로잉 북 9 1960년대, 종이에 혼합매체,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드로잉 북 12 1964, 종이에 혼합매체, 25.8X35.7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입산 1964, 종이에 연필, 19.8×27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전시 기획의 글
《권진규의 영원한 집》
2021년 7월 (사)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은 많은 사람이 권진규의 작품을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 총 141점의 작품을 기증했습니다. 기증 작품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조각, 소조, 부조, 드로잉, 유화 등으로 다양한데, 특히 1950년대 주요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2022년 미술관은 기증자의 뜻을 기리고,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대규모 회고전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2022.3.24.— 5.22.)를 개최했습니다. 전시 기간 중에 (사)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와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하여 기존 연구의 오류를 정정하고, 새로운 연구 결과를 냈습니다. 이어 순회전으로 《영원을 빚은, 권진규》(2022.8.2.—10.23., 광주시립미술관)를 공동 개최했습니다.
2023년 미술관은 권진규 작고 50주기를 맞아 벨기에영사관이었던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1층 5개의 전시실을 권진규 상설전시실로 조성합니다. 구벨기에영사관과 권진규는 굴곡진 동시대를 살아왔습니다. 대한제국(1897—1910)은 세계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주권을 지키기 위해 중립국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를 위해 벨기에와 외교적 연대를 맺었고, 1905년 벨기에는 중구 회현동에 영사관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중립국화가 실패하면서, 이 건물은 광복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도심재개발사업으로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축되었고 2004년에는 소유주인 우리은행이 서울시에 영구 무상 임대하여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권진규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한·일 국교 단절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을 어렵게 오고 가며 조각가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미술관이라는 영원한 안식처를 찾았습니다. 이제 남서울미술관과 그의 작품은 서로를 품으면서 그 존재와 의미를 강화하게 됩니다.
권진규에게 진정한 작품은 자기 주변의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 연구하여 단순히 본질만을 담아낸 것이었습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사실적인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 영원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종래는 이를 무화無化하는 작품으로 자신만의 모더니티를 구현했습니다.
“진실의 힘의 함수관계는 역사가 풀이한다.”라는 권진규의 시구처럼, 지금은 어떤 제약도 없는 동시대 미술에서 그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양한 해석으로 풀어낼 때입니다. 이에 미술관은 그간의 연구성과를 반영해 상설전시 ≪권진규의 영원한 집≫을 개최합니다. 전시는 도쿄 무사시노미술학교 시기의 '새로운 조각', '오기노 도모', '동등한 인체'와 서울 아틀리에 시기의 '내면', '영감', '인연', '귀의' 등 7개의 소주제에 맞는 작품과 자료로 구성되어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은 남서울미술관을 통해 권진규 관련 기관을 연결하여 작품과 자료를 공유하고, 연구자들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상설 전시는 앞으로의 연구성과물을 반영하여 정기적으로 작품과 자료를 일부 또는 전면 교체하여 변화를 줄 예정입니다. 이로서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은 권진규의 영혼이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집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전시 구성
■ 도쿄 무사시노미술학교(1949—1956)
ㅇ 새로운 조각: 권진규는 1953년 니카회二科會가 주최한 제38회 니카전二科展(9.1.—19, 도쿄도미술관)에 말을 소재로 한 석조 세 점을 출품했다. 니카회는 1914년 신진작가들이 문전文部省美術展의 서양화부에 반하여 새로운 미술의 확립을 표방하고자 결성한 일본의 재야 미술 단체이다. 이 “유파의 여하를 불문하고 새로운 가치를 존중하고, 창작자의 제작상의 자유를 옹호 발탁한다.”라는 취지를 바탕으로 시대의 새로운 경향을 흡수하면서 초기부터 저명한 예술가를 배출했다. 그는 당시 일본 조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돌을 재료로, 육면체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각 면을 각기 다른 깊이와 형태로 조각한 <기사>(1953)와 <마두 B>(1953) 등으로 특대特待를 수상했다. 니카회의 설립 취지처럼 자유롭게 제작된 새로운 조각이었다.
ㅇ 오기노 도모: 권진규는 1951년, 3학년 때 같은 아틀리에에서 실기수업을 받던 서양화과 2학년 오기노 도모에게 모델을 부탁했다. 그가 <도모> 연작을 제작하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했다. 그는 1952년부터 여름이면 도모의 본가 근처 산장에 머물며 점토 작품과 목조불상을 제작했다. 그는 도모의 경제활동으로 생활하기도 했다. 1955년 여름 권진규는 도모의 본가 근처에서 가마에 기와를 굽는 것을 보고 테라코타를 시작했다. 1959년 그는 어머니의 병세 악화로 귀국을 결심했는데, 한일 수교 전이라 도모와 혼인신고만 하고 홀로 귀국했다. 결국 둘은 헤어졌지만 권진규에게 도모는 훌륭한 모델이었고 예술적 교감과 생계를 나누었던 동료이자 연인으로 그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ㅇ 동등한 인체: 권진규는 일본에서 남성상과 여성상을 많이 제작했다. 현존하는 남성 나상裸像으로 <남성입상>(1953년경)은 부르델에서 시미즈로 이어지는 인체의 사실적 구조와 섬세한 근육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나부>(1953–54)는 두 다리를 땅에 단단하게 딛고 선 당당한 자세가 인상적이다. <여성입상>(1954)은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신체 각각 부분이 조금씩 틀어져 자연스럽고 석고의 거친 질감과 어두운 채색이 눈에 띈다. <웅크린 아프로디테>를 모본으로 한 <나부>(1954)는 섬세한 근육이 돋보인다. 네 개의 나상은 남녀의 신체적 차이보다 인체의 공통적인 구조와 질감을 강조했다. 이후 그는 1968년 일본 개인전을 위해 다양한 동작의 작은 나부상을 많이 제작했다. 일본 조각가들이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강조한 관능적인 여성상을 만들었다면, 그는 생명력을 강조한 강건한 여성상을 만들었다. 권진규는 작품을 통해 구조와 본질을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남성상과 여성상에 큰 차이를 두지 않았다.
■ 서울 아틀리에(1959—1973)
ㅇ 내면: 권진규는 여느 작가들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자화상, 자소상, 자각상 등을 남겼다. 형태는 마스크, 두상, 흉상 등으로, 재료는 테라코타, 나무, 석고, 건칠 등으로 다양하다. 1958년 제44회 이치요오회一陽會 미술전람회에서 이치요오상一陽償을 수상한 테라코타 <두상>(1958)은 부드러운 인상과 그윽한 눈빛을 갖고 있는데, 부르델의 작품처럼 석고 틀에서 흙을 제거할 때 생긴 선이 그대로 남아있다. 테라코타 <자소상>(1968)은 정제된 표현, 응축된 내면세계로 서슬이 푸르다. 그러나 1970년대 자소상은 세 번째 개인전에 대한 저조한 반응, 동상제작과 해외 전시의 무산, 건강 악화 등 그가 처한 여러 악재를 반영한 듯 고뇌에 차 있다. 이들은 시기별로 양식과 표현의 차이가 있는데 이는 권진규의 개인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내면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ㅇ 영감: 권진규는 3년간 불어를 공부해 부르델의 원서를 독파했을 정도로 부르델을 흠모했고,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부르델은 서구 문명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 아케이즘 양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술을 추구했다. 그 역시 동서양의 고대 유산을 참조한 그만의 강건하고 응축된 형태의 작품으로 변치 않는 본질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동서양의 미술만이 아니라 전통, 문학, 음악, 자연 등 다양한 분야에 깊이 몰두했고, 이를 작품에 유연하게 반영해 새로운 작품을 창조했다. <춤추는 뱃사람>(1965)은 고대 에게 초기 키클라데스Cycladic 문명의 여신상처럼 단순하게 표현된 사람 얼굴과 부르델의 작품처럼 다양한 표면 질감을 가졌다. <앉아있는 여성>(1972)은 모딜리아니의 카리아티드Caryatid를, <흰 소>(1972)는 이중섭의 <황소>(1953)를 모본으로 했다. 권진규는 다양한 문화를 존중했고, 이를 재해석해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했다.
ㅇ 인연: 권진규는 1965년 첫 개인전 이후, 여성 두상과 흉상을 본격적으로 제작했다. 전시에 감동한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학생 이선자가 아틀리에를 찾아와 조각을 배우고 모델을 서면서 그는 다수의 <선자>(1966)를 제작했고, 선자의 친구들을 대상으로 두상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친척 권옥연이 소개한 유준상이 주선한 여성들과 홍익대학교 제자들을 대상으로 흉상을 제작했다. 그는 작품에 대상의 내적 세계를 담기 위해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을 모델로 삼았고,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입체적인 얼굴을 선호했다. 고대이집트 미술이 대상을 표현할 때 세부 표현보다는 대상의 본질에 집중했던 것처럼, 그의 흉상 역시 정면을 향한 단정한 얼굴, 먼 시선, 앞으로 살짝 뺀 긴 목과 단순화된 흉부 형상으로 대상의 정수를 드러냈다. 1970년대에 그는 기존 테라코타 석고 틀을 사용해 건칠 여성 흉상을 제작했는데, 삼베를 거칠게 붙이고 옻을 어둡게 칠해 같은 틀에서 나온 테라코타 작품보다 더 고양된 정신성을 드러냈다.
ㅇ 귀의: 권진규는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라 불교적 세계관을 가졌고, 이는 그의 삶과 작품 전반에 스며들었다. 그는 속리산 법주사 미륵 대불 마무리를 시작으로 꾸준히 불상을 제작했다. 그의 <보살입상>(1955)은 몸은 보살이나 머리는 부처로, 전형적인 도상에 얽매이지 않았다. 이는1970년대 불상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그는 귀국해 손수 지은 아틀리에에서 마치 수행자처럼 작업에 정진했고, 1960년대에 고유의 작품세계를 확고히 구축했다. 그는 불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으로 제1회 개인전에 <입산>(1964)을, 제2회 개인전에 <비구상>, <춘엽니> 등을 출품했다. 1971년 초, 그는 절에서 수양하며 불상을 제작했고, 6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불교적 세계로의 고뇌 어린 침잠 같은 것’이라고 술회했다. 그해 제3회 개인전에는 건칠 불상 11점을 출품했으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더하여 바라던 일들이 무산되고 건강까지 악화되자 1973년 5월 권진규는 영원히 사는 작품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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