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간 도시들 Cities in the Room
2023.07.20 ▶ 2023.08.11
2023.07.20 ▶ 2023.08.11
전시 포스터
김희천
메셔 Every Smooth Thing through Mesher Single Channel Video(16:9), 30min., 2018
정재경
코메디아 Commedia 3840×2160px, Single Channel Video, 33min., 2022
최윤
막다른 길 걷기 Walking the Dead End 4-channel Video, 16min. 6sec., 2021
한선우
긴 비 Long Rain 캔버스에 아크릴, 215×156cm, 2023
실내 공간은 도심의 거리와 대조되는 사적 영역으로 여겨져 왔으나, 지난 팬데믹 동안 촉발된 사회적 거리두기와 디지털 미디어의 보편화로 인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방으로 간 도시들』은 '방'을 도시 경험이 이뤄지는 주요 공간으로 조명한다. 현대 도시를 상징하는 거리가 텅 비는 동안 사적 영역이던 실내 공간은 도시적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으며, '방'은 소셜 미디어에서 여느 거리와 다를 바 없이 연출되고 비쳐진다. 전시장이 위치한 SeMA 벙커의 장소성 또한 중요한 맥락을 형성한다. 과거 군부 독재 시절 만들어져 현재 서울의 금융권 한복판에 자리한 지하 벙커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질을 참조한다. 특이하게도 서울은 세계적인 대도시로서 다양성을 주지하면서도, 동시에 단일 언어와 인종으로 이뤄져 균질성을 추구하며 빠르게 새로운 문화에 노출되고 영향받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로 인해 실내 연출, 실내 간의 연결이 어느 도시보다 활발하게 이뤄지며, 오늘날 도시를 '방'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김희천, 정재경, 최윤, 한선우 네 명의 참여 작가들은 이러한 도시 문화 속 '방'을 다루는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장 초입에는 서로 다른 방에서 촬영된 영상으로 구성된 김희천의 「메셔」가 위치한다. 어두운 실내에서 촬영해 빛의 밝기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피사체들이 영상에 남기는 흔적'을 큰 특징으로 지닌다. 이는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조도에까지 개입하여 영상 내 인물들은 물론 영상 너머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효과를 낳는다. 내용적으로도 등장인물들이 방 너머를 의식하거나 개입하는 등 관람객으로 하여금 '방'을 들여다보는 방식을 새로 고침하게 하는 요소가 잇따른다. 이때 방은 등장인물의 사적 영역이기보다 다양한 주체가 뒤섞이는 공간이 되고, 영상 매체는 작품 안에 한정되기보다 전시 공간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피부를 납작하게 누를 때 사용하는 이식 수술 도구에서 따온 '메셔'라는 제목처럼, 관람객들은 날카로운 소리와 영상 효과로 이루어진 작품을 통해 방 너머로 내몰리는 듯한 경험을 하며 오늘날 '방'의 입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선우는 실내 공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신체 감각'의 변화를 다룬다. 자신의 방을 소재로 삼은 작가의 회화 3점은 실내 공간이 폭우를 비롯한 실외 요소들과 뒤엉켜 '방'이 매개하는 다양한 환경을 드러내는 한편, 축축한 빗물이나 습기를 머금은 카페트 등의 요소들을 등장시켜 물리적 접촉을 통해 발생하는 감각을 자극한다. 도시학자 리처드 세넷은 실내 공간이 디지털 미디어로 매개되며 촉각성이 상실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한선우는 그동안 자신의 회화가 가상공간에서 이미지로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감각'에 집중해 이뤄지는 관람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2005년 침수된 상태로 발견되었던 전시장 SeMA 벙커에 맴도는 음습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신체 감각에 집중하게 한다.
최윤의 「막다른 길 걷기」는 팬데믹으로 인해 물리적 관람이 어려웠던 지난 전시를 영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오늘날 도시 여기저기를 이동하고 있는 '방'의 존재 양식은 어떠한가? 팬데믹 당시 공간을 담고자 성행하던 360도 촬영이 이 작품의 주된 기법이지만, 정작 작가가 보여주려는 것은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오류들이다. 공간은 포개지거나 뒤틀리고 있으며, 실제 전시 뷰와 조작된 가상의 뷰는 혼동을 일으키는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방 안에서 혹은 어떠한 방을 온전히 봤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오류로 가득한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4개의 채널은 각기 다른 전시 디자인과 접목되어, 한 전시 공간 안에서 전혀 다른 방식들로 관람객들에게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정재경 작가의 「코메디아」는 현대의 '방'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인구를 다룬다. 등장인물들은 전생의 어떠한 기억에 사로잡힌 채로, 과거 도시의 랜드마크 기능을 하던 화려한 놀이공원을 배회한다. 관객들은 이유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삶이 비극적으로 무너진 이들의 여정을 쫓으며 도시의 생애주기를 살피게 된다. 「도깨비 터」는 작가가 부동산 중개업자와 함께 진행한 리서치에 기반한 작품이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도깨비 터'는, 현대 도시 문화 속에는 이해할 수 없거나 망각해야만 하는 사건과 가치들을 함축하고 있는 장소들이다. 방 안에서 일어나는 도시 경험을 활발하게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이에 뒤쳐지는 인구도 존재하기에 사회, 윤리적 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논의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도록도 함께 마련된다. '방'에 관한 참여 작가들의 생각이 담긴 글과 더불어, 건축가, 큐레이터, 미술이론가, 사회학자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구성이다. 도시를 '방'이라는 개념으로 살피는 맥락(임동근), '미술 전시'라는 형식이 이 주제와 어떻게 상응하는지(정다영), 일련의 변화에 따라 잃어버린 내면성(마크 핌롯), 새로운 매체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내면성(김홍중), 장소의 고유성이 사라질 때의 공간성(권태현), 공간적 해석이 중요한 이번 전시 디자인에 관한 글(전민지)은 전시 주제를 확장하고 부연한다. ■ 최나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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