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임군홍
소녀상(아내상) 72x60cm, Oil on canvas, 193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임군홍
한복 입은 여인 97.5x69cm, Oil on canvas, 1930년대
임군홍
북해공원 44.5x52cm, Oil on canvas, 1940년대
임군홍
가족 96x126.5cm, Oil on canvas, 1950
임군홍
자금성 풍경 60x71.5cm, Oil on canvas, 1940년대
임군홍
비 온 뒤 풍경 32x45cm, Oil on canvas, 1940년대
임군홍
정물 52.2x65cm, Oil on canvas, 연도 미상
임군홍
자화상 33x23.5cm, Oil on wood panel, 1948
임군홍
아들을 지켜주는 고양이 21x14.5cm, watercolor on paper, 1948
정전 70주년 기념전
화가 임군홍_ Lim Gunhong, The Painter.를 준비하며
2023년 4월 예화랑 45주년 기념 전시 ‘밤하늘의 별이 되어’ 준비로 바빴던 지난해 연말, 우연히 조간신문을 보다가 눈에 확 뜨이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인 김인혜 선생님이 쓴 임군홍 화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달력에 최승희 사진 실었다고 억울하게 옥살이한 이 화가를 아십니까’란 제목의 글이었는데 우리나라 근대 화가로서 탁월한 기량을 선보이던 임군홍 화가가 해방 후 이념 갈등의 희생양이 되어 납북되는 바람에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던 비운의 사연을 자세히 전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내내 예화랑 전신인 천일화랑을 만들고 우리나라 산업미술의 원조 격으로 활동했던 외할아버지 이완석의 삶을 추적해오던 저는 처음 접한 ‘임군홍’이란 이름에서 분명히 외할아버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작가였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어쩌면 외할아버지를 잘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우선 두 분 모두 태어난 무렵이 비슷했고 (임군홍-1912년, 이완석-1915년) 서울에서 살던 집도 똑같이 명륜동이었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게다가 임군홍이 일제강점기 중국과 경성에서 광고 회사를 했다는 것도 산업디자이너 1세대로 활약했던 외할아버지 삶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두 분이 교류하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인혜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과연, 제 예감이 맞았습니다. 일찍이 임군홍이라는 화가를 잘 알고 있었던 김 선생님은 제게 그의 아들인 임덕진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드님이신 임덕진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임 선생님은 저의 전화에 매우 반가워하셨습니다. 화랑에 오셔서 외할아버지 사진들을 보는 순간 ‘완석이 아저씨’라고 부르며 임군홍 선생님과 이완석 할아버지는 동료였다는 것을 알려주셨고 아버지가 납북된 뒤에도 집에 오셔서 당신에게 용돈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치 외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듯 너무 신기하고 반가웠습니다.
임덕진 선생님은 예화랑 45주년 기념 전시에 아버지 임군홍 작가의 작품 8점을 선뜻 내주셨습니다. 전시는 끝났지만 제 머릿속에는 무거운 숙제 같은 게 하나 생겼습니다. 임덕진 선생님을 통해 만난 임군홍의 작품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계속 잔상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시가 끝나자마자 다시 임 선생님댁을 방문해 한 점 한 점 차분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림을 보면 볼수록 이렇게 훌륭한 예술가를 우리가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이념으로 분단된 나라에 살았던 한 뛰어난 예술가와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도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만약 임군홍 선생님이 북에 가지 않았더라면 외할아버지가 1954년 천일화랑에 40명의 근대 미술가들을 대거 모았던 전시에 임군홍 작가의 작품들이 당연히 출품되었을 것이고 이후 한국 사회는 이 위대한 예술가를 기억했을 텐데 이런 저런 사연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으니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임덕진 선생님이 저희 아버지가 화랑협회장을 지내던 80년대 초반에 예화랑을 직접 찾아와 ‘임군홍 전’을 상의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이렇게 40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임군홍 작가와 예화랑과의 인연은 마치 저에게 운명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저의 그런 마음에서 시작되었고 감사하게도 유족들의 허락으로 소장품의 대부분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념의 프레임을 걷어내고 만난 임군홍의 작품세계는 놀랍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억압된 시공간 속에서도 한국과 중국을 자유롭게 오가며 독학으로 일군 자신만의 화풍을 과감하게 실현시킨 담대함과 자유분방함이 우선 놀라웠고 장르를 넘나들며 캔버스에 펼쳐내는 대단한 힘에 압도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힘든 시절을 살아 내시면서도 작품들을 이렇게 잘 보관해 놓으신 유족들에게 깊은 존경심이 일었습니다.
임군홍은 미술사적으로 다시 재평가되고 기려야 할 작가입니다. 이동 수단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1,134km나 되는 베이징과 한커우를 오가며 중국의 고대 유적물들을 집중적으로 그린 풍경화에서는 작가의 대상에 대한 몰입이 대단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양한 대상과 인물들을 그린 인물화, 정물화들에서는 서양 근대미술의 장르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낸 탁월한 기량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80년, 90년 전 작품들은 지금 봐도 촌스럽기는커녕 모던하고 현대적입니다. 옛날 그림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저에게 임군홍의 작품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느낌입니다.
오랜 인연의 끝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우리의 멋진 유산, 임군홍의 작품 세계와 그의 예술정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발하리라 확신합니다.
예화랑 김방은 대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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