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미술아카이브전 [추상의 추상]
2023.07.21 ▶ 2023.11.26
2023.07.21 ▶ 2023.11.26
전시 포스터
양수아
무제 1971, 73x90.5, 캔버스에 유채
김보현
무제 1959-1965, 213x183, 캔버스에 유채
정영렬
적멸 84-P11 1984, 63x99, 한지
최종섭
Korean Fantasy 1991, 162x130, 캔버스에 한지
김용복
시공 1976, 93x93, 캔버스에 유채
탁연하
Twist-1 1987, 39x66x43, 청동
김영중
삶의멋 1999, 137x40x53, 대리석
강용운
부활(復活) 1957, 33.3x24.2, 목판에 유채
광주시립미술관은 남도 추상미술의 선구자들을 기리며 《추상의 추상》을 개최합니다. 《추상의 추상》은 근대기 광주를 비롯한 남도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남종화와 자연주의와 서정주의에 기초한 구상미술이라는 두 가지의 큰 흐름 속에서도 움터나온 추상(抽象) 추상(抽象): 순수한 점·선·면·색채에 의한 표현을 목표로 한 그림.
미술을 추상(追想) 추상(追想):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하고자 합니다. 또한 추상미술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시기에 굴곡진 길을 걸어간 이들을 추상(推尙) 추상(推尙): 높이 받들어 소중히 여기고 우러러봄.
하려 합니다.
작은 섬에서 바라본 밤바다에서 큰 우주를 끌어낸 김환기
이념 대립의 희생자로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지녔던 김보현
중앙 화단보다 일찍이 비정형의 추상 형식을 선보인 강용운
민족 상쟁의 비극에서 차오르는 울분을 토해낸 양수아
시간과 공간의 변화와 그 안에서 생명을 포착한 김용복
한지를 통해 한국적 정체성과 열반을 추구한 정열렬
30년간 ‘에뽀끄’를 이끌며 한국의 정서를 찾았던 최종섭
선과 면의 유기적인 조화로 독창적 조형미를 보여준 김영중
군더더기 없는 선으로 약동하는 생명력을 표출한 탁연하
뜨거운 남도이지만, 추상 미술에서는 척박했던 이곳에서 격동하는 현대사의 비극과 개인적 아픔을 격정적인 붓질과 때로는 정제된 손짓으로 풀어냈던 이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소중히 기억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부, 낭중지추(囊中之錐), 분출하다.
- 주머니에 들어 있는 송곳은 아무리 감추어도 끝이 뾰족해 밖으로 튀어나온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는 신안 안좌도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고향을 떠났기에 남도 추상화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길렀던 남도의 정서와 토속적 정취는 이후 독특한 서정성의 바탕이 되었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지역에 추상 미술을 흩뿌리고 바탕을 마련한 이들은 강용운과 양수아다. 이들은 1939년 일본의 미술학교에 입학하고, 해방을 전후로 귀국하여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해방 이후 전쟁 전까지 해방 공간은 일제강점기 동안 억눌려 있던 여러 욕구와 이념의 대립으로 혼란했던 시기였다. 이때는 광주·전남의 미술계에 화단이 형성되는 과도기이기도 했다.
김보현이 조선대학교 예술학과 창설에 기여하며 첫 교수로 부임하며 김보현을 중심으로 ‘광주미술연구회’가 창립되었다. 1948년에는 김보현이 목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이때 강용운과 양수아가 처음으로 조우하기도 한다. 이후 1950년 광주 미공보원에서 강용운이 반추상 작품들로 개인전을 개최한다. 6.25 전쟁 시기에 양수아는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고, 김보현은 좌우익의 대립에 휩쓸려 고초를 겪는다. 감추려 한 송곳이 튀어나오듯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 쌓인 격정은 결국 추상 미술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2부 일엽지추(一葉知秋), 가늠하다.
- 잎이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다가오는 것을 안다.
1950년대 이후 남도의 화단은 조선대학교와 광주사범학교 등에서 배출한 신진 작가들로 더욱 활기를 띤다. 강용운은 1949년 전남여고에서 광주사범학교로 옮기며 제자들을 길러냈고, 1956년에는 광주사범대학으로 옮겨간다. 이후 광주사범학교는 양수아가 후임으로 오며 명실공히 지역 추상미술의 중추가 된다. 정영렬(1954 졸업), 최종섭(1957 졸업) 등이 졸업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홍익대를 졸업한 김용복(1960 졸업)이 고향인 여수로 내려오며 추상 2세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가 열린다.
1960년대는 광주미술의 급변기였다. 1960년 강용운과 양수아 등이 ‘전남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1961년에는 광주의 고등학교 미술부 학생들이 ‘청자회’를 결성하고 강용운, 양수아 등이 지도 고문으로 참여한다. 또 오지호와 강용운이 추상미술에 대해 신문지면 상에서 뜨거운 논쟁을 펼치며,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1964년에는 최종섭과 박상섭, 명창준이 《비구상 3인전》을 개최하고 이를 계기로 광주의 첫 추상미술단체인 ‘현대작가 에뽀끄’를 결성한다. 최종섭, 김용복 등이 창립 회원이었으며, 지역의 엥포르멜을 주도해갔다. 이후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며 지역과 중앙 화단의 가교 역할을 하던 정영렬과 함께 서울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을 초대하여 [창립 10주년기념발표전]을 개최했다. 추상 2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지역의 추상 미술의 뿌리를 키워가며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3부 만고천추(萬古千秋), 지속되다.
- 기나긴 세월, 오랫동안 영원히 기억될
남도의 근현대 조각은 해방 이후부터 시작되는데 그 기틀을 마련한 이들로는 김영중과 탁연하가 있다. 탁연하는 1950년 종군작가단에 지원하여 광주의 상무대에서 지내던 중 광주의 최초 야외대형조각인 [을지문덕상] 건립에 참여한다. 이는 제작 방식과 규모 때문에 지역에서도 큰 관심을 모아 조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탁연하는 홍익대 조각과로 편입하고 1956년 《제2회 홍대미전》에 전쟁의 상처와 고뇌를 형상화한 [피난가족]을 출품하며 앞으로 추상 조각으로의 작업 방향을 가늠케 한다. 이후 1959년 광주공원 [어린이헌장탑] 공모에 당선되며 광주 생활을 시작하고 조선대에서도 강의를 맡게 된다. 광주에 머무르는 동안 광주·전남의 기념동상 제작을 도맡으며 지역 조각계의 터를 닦는 역할을 한다.
김영중은 광주농업고 시절 조각부 활동을 했고, 서울대 미술학부에 진학했다가 1954년 홍익대 조각과로 편입한다. 1965년에 시작한 전남도전 심사를 위해 광주를 다니며 이 지역의 조각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며 영향을 미친다. 광주 중외공원의 [광주어린이탑 큰뜻](1987)과 일명 ‘무지개다리’로 불리는 [경계를 넘어](1995)를 제작하였다. 또한 최초의 조각공원인 ‘목포 유달산 조각공원’ 건립과 ‘광주 비엔날레’의 창설과 개최를 건의하며 지역 미술 진흥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이들이 조각의 주재료로 이용했던 청동과 철, 석재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물성이 변하지 않는다. 김영중과 탁연하가 지역에 심어놓은 조각에 대한 혼 역시 오래 기억될 것이다.
1934년 광주광역시출생
1921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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